김제시 백구면, 부량면, 공덕면. 이 세 지역은 겉보기에 조용한 시골 동네 같지만, 매일같이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겐 그 조용함이 결코 느긋한 게 아니다. 아침엔 밭에서, 오후엔 점포에서, 밤에는 회계장부를 들여다보는 이 지역 자영업자들에게 하루는 언제나 짧고 빠르게 흘러간다. 그런 동네에 요즘 작은 변화가 일고 있다. 바로 포스기, 무선단말기, 키오스크라는 말들이 실제 매장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손님이 오면 종이에 주문을 적고, 큰소리로 주방에 “비빔국수 하나!”를 외치고, 계산대에서 현금이든 카드든 서너 번 긁어가며 겨우 결제를 마치곤 했다. 어떤 날은 주문 누락으로 손님과 실랑이가 벌어지고, 어떤 날은 계산대 옆에서 줄 서 있는 손님들이 짜증 섞인 한숨을 쉬었다. 특히 혼자 운영하는 소규모 식당이나 분식점은 피크타임만 되면 전쟁터처럼 바빠져, 손님을 잘 모시고 싶어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공덕면에 있는 작은 국밥집이 포스기를 들였고, 부량면에 있는 김밥집은 무선단말기를 도입했다. 백구면 시장통 입구에 새로 생긴 분식집은 아예 키오스크까지 설치했다. 그 변화는 조용히 시작됐지만, 확실했다. 포스기를 설치한 가게는 주문 누락이 줄었고, 음식 나가는 속도와 정확도가 좋아졌다. 단골들은 “이젠 주문이 더 빠르게 나오네”라고 말했고, 사장님은 “예전보다 덜 정신없다”고 했다. 무선단말기를 쓴 김밥집은 자리에서 결제하려는 손님들의 수요를 그대로 받아주면서 회전율이 올라갔다. 무엇보다 손님이 ‘편했다’고 느끼는 순간, 가게는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되었다.
백구면에 새로 생긴 키오스크 매장은 조금 더 과감했다. 사장님 혼자 운영하는 이곳은 손님이 메뉴를 보고, 버튼을 누르고, 결제까지 스스로 한 후 자리에 앉으면 음식이 나온다. 어르신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화면에 사진과 설명이 함께 나와 오히려 더 친절하게 느껴진다는 말도 나왔다. 한 청년은 “서울보다 더 편하네요”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사장님은 말한다. “나는 말없이 일만 하면 되니까, 그게 참 좋아요.” 키오스크가 없던 시절, 한창 바쁠 때 주문 받고, 결제 받고, 요리까지 하느라 혼자 뛰어다니며 헉헉대던 그 기억은 이제 지워지고 있다.
이 세 동네의 변화는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장사를 오래 해본 사람들은 느낀다. 손님은 음식만 보지 않는다. 주문받는 방식, 결제 속도, 기다리는 시간, 그 모든 것이 경험이고 기억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기억이 쌓일 때, 장사도 달라진다. 포스기는 단순히 전자기기가 아니라 정확한 장사의 틀이고, 무선단말기는 손님에게 배려를 전하는 도구이며, 키오스크는 혼자 일하는 사장님에게 가장 충실한 동료가 되어주고 있다.
백구면, 부량면, 공덕면은 지금도 느리게 흐르는 듯 보인다. 하지만 가게 안에서는 분명 변화가 시작됐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고, 익숙함을 조금만 바꿨을 때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다. 조용한 동네, 조용한 장사에도 이제 조용한 기술이 스며들고 있다. 그 기술이 만든 여유는, 생각보다 더 따뜻하고 환한 웃음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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