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동충동의 아침은 여전히 느긋하게 열린다. 채소 박스를 끌고 나오는 상인의 손끝, 가게 앞을 쓸며 흘리는 물줄기, 시장 안으로 퍼지는 국밥 냄새. 시간은 도심보다 천천히 흐르지만, 사람들의 손놀임은 분주하다. 하정동을 따라 이어진 좁은 골목, 그리고 죽항동으로 이어지는 남원 전통시장의 골격 위로 작은 변화들이 하나둘 새겨지고 있다. “예전엔 현금 아니면 안 됐죠. 계산기도 없이 손으로 다 했어요.” 죽항동에서 30년 넘게 칼국숫집을 운영해 온 박 사장님의 말이다. 그런 그가 작년 말, 포스기를 들였다. 처음엔 반신반의였다. “이 나이에 내가 기계를 쓴다고?”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포스기 옆에 익숙한 모습이다. “이게 있어야 주문 빠뜨릴 일이 없어요. 오늘은 칼국수가 몇 그릇 나갔는지도 바로 뜨고요.” 손님이 많지 않은 평일 점심, 주방에서 혼자 음식을 만들며 주문서가 프린터로 출력되는 걸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묘한 만족감이 묻어난다.
하정동의 분식집에선 무선 카드단말기가 손님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예전 같았으면 계산을 하려고 다시 카운터로 가야 했지만, 이젠 자리에서 바로 결제된다. 특히 젊은 손님들, 관광객, 여행객이 “아 여기서도 삼성페이 돼요?”라며 놀란 눈빛을 보일 때면, 사장님은 괜히 으쓱해진다. “우리도 이제 그런 거 다 돼요.” 말끝에는 자부심이 묻어난다. 변화는 거창한 데서 오는 게 아니었다. 오랜 세월 손에 익은 장사 속에서 작은 편의 하나가 늘어났을 뿐인데, 손님의 눈빛이 바뀌고, 가게의 공기가 달라졌다.
동충동 시장 초입의 작은 카페는 키오스크를 도입한 이후, 손님이 두 배로 늘었다. “젊은 손님들이 많아지니까, 주문이 편해야 하잖아요.” 바리스타이자 사장인 30대 청년은 말한다. 처음에는 어르신들이 어려워할까 걱정했지만, 메뉴를 크게 띄우고 터치 방식도 단순하게 구성하자 곧 익숙해졌다고 한다. “이 버튼 누르면 커피 나오네”라는 말과 함께, 이제는 어르신들도 셀프로 아메리카노를 고른다. 카운터에 줄이 없고, 주문이 정확하게 들어오고, 실수도 없으니 사장님은 커피에만 집중할 수 있다. “내가 바뀐 게 아니라, 일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에요.” 그는 그렇게 말했다.
남원은 예부터 문화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도시다. 하지만 그 전통 속에도 변화는 스며든다. 포스기 한 대, 무선 단말기 한 대, 키오스크 하나가 시장의 정서를 해치지 않고도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다. 익숙한 풍경을 지키되, 일하는 방식은 조금 더 똑똑하게. 동충동, 하정동, 죽항동, 이 세 동네는 조용하지만 분명히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오래된 장사가 다시 웃으며 숨 쉴 수 있게 만드는 작은 혁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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